천재화가 몽우 조셉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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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1-03 17:32
몽우님이 시인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전각으로 완성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위대한 천재 시인에게 바치는 이 위대한 천재화가 몽우님의 노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국내에서 백석에 대한 전문가의 한 분으로 성장한 이 화가는 백석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사숙이 깊다.
몽우님은 2005년 초에 병원에서 한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선 *과 백*병은 이미 그를 7년 동안이나 괴롭히고 있었다. 초음파 치료기가 없으면 잠을 잘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 기계는 미국에서 들여온 최첨단 암치료기였다.
당시에는 이런 치료기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입에서는 고름이 한가득 나오는 상황이었다. 너무나 절망이 깊어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몽우님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불세출의 위대한 천재화가가 도장장이로 먹고사는 형국이었다. 그의 공방의 타이틀은 도장집이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은 이 병들고 시들어가는 화가를 도장이나 파는 인물로 알았다. 그러나 그 도장은 예술도장이었다. 도장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초라한 벌레나 이름 없는 풀이나 나무 그리고 해와 달이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그마한 새와 풀 그리고 나무들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주문은 마구 들어왔다. 그러나 참으로 저렴한 만원대의 가격 때문에 엄청난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음을 맞이하는 화가에게는 이것 또한 비극이었다. 화가가 화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이쁜 도장을 파는 그것도 대부분 아이들 용으로 사용되는 도장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절망 속에서 무엇이 있는가. 절망 속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는가. 절망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수가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도심 속에서 쪄들어 죽을 것인가. 이런 갈등과 번민만이 천재화가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가 이 위대한 천재화가를 살릴수 있을 것인가.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이 화가를 살릴수는 없었을까. 다행히 병원에서 예감했던 죽음의 시간을 몇일 앞두고 천재화가 몽우는 자신의 생전에 소원을 풀 기회를 얻었다.
국내의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천재화가의 첫 전시회를 부산에서 열게 된 것이다. 항도 부산이 어떠한 의미던가. 천재화가 이중섭이 부산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그것도 문현동에서 살았던 것이다. 몽우를 발견한 분도 당시 부산의 문현동에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인연이란 말인가. 이렇게 만날 인연은 질기게 이어질수 있었던 것일까.
그때 몽우는 그 분의 권유로 물을 먹게 되었다. 바로 일본에서 유명한 트림알칼리 환원수였다. 국내에서는 트림 환원수로 알려진 기*의 물이었다. 이 물은 이미 일본에서는 당*병이나 *치료에 특*가 있다면서 병원에서 쓰는 약*수였다. 다리를 잘라야할 상황에서 이 물을 먹으면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기*의 물이었다. 그 물을 먹게 된 몽우는 몸의 변화를 느꼈고 결국 3달 만에 놀랍게도 죽지 않고 기*적으로 완*가 되었다.
국내 첫 전시회를 가진 후 자신의 소원을 달성하게 된 몽우는 이 물과 함께 살아난 것이었다. 많은 찬사가 부산에서 이어졌고 이로써 몽우님은 비로소 지지자를 얻게 된 것이다. 부산이라는 그 질긴 인연을 함께 말이다. 부산 서면의 태화 웨딩홀은 그 질긴 인연은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기도 했다.
몽우님의 그림은 문현동에서 베이스캠프를 치면서 전시회를 가졌다. 이중섭의 뒤를 이어 천재화가 몽우도 부산에서 잠시 체류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중섭이 하지 못한 전시회를 했던 것이다. 그 전시회는 대성공이었다. 부산의 미술가들이 천재화가 몽우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몽우님은 고단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안산으로 올라왔다.
안산은 죽어야할 몽우님이 살아있는 것을 용납을 못하는 도시였다. 그만큼 천재화가를 곁에 두고도 모르는 무정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산은 몽우님에게 또 다른 질긴 인연의 도시가 아닌가. 안산 시장이 몽우님에게 자신의 도장을 맡긴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은 몽우가 살아난 것에 대해 믿지를 못한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투병을 이기셨나요?"
이런 질문에도 선뜻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천재화가인 몽우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죽*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왔던 몽우로서는 물을 먹고 나았다는 말을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제가 트림 환원수 물을 먹고 나았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것 같아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제 병이 나았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입니다."
현재 몽우님의 그림 값은 호당 2천만원이 넘는 초대형 화가로 성장을 했다. 2007년도에는 호당 1억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강력하게 대두가 되고 있다. 이런 엄청난 그림에 대한 존재감은 전 세계의 화가 중에서 아마도 유일할 것이다.
아무리 제도권 화가들이나 비평가들 그리고 로비를 해야 기사가 나오는 신문에 나오지 않아도 천재화가 몽우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더러운 바닥에서 그렇게 깨끗하고 순수한 천재화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이다. 이중섭이 더러운 문화풍토와 미술풍토 그리고 더러운 기자들의 풍토에서 외롭게 죽었듯이 천재화가 몽우도 의도적으로 무시되는 경향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알려진 천재화가 몽우의 모습은 한층 성숙되고 그림이 성장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뚜렸한 화가가 얼마나 있을까. 영혼이 순수한 화가가 얼마나 있을까. 더러운만 남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착한 화가가 어디에 있을까.
이런 화가의 성장에는 바로 생명의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약수는 바로 천재화가 몽우를 살린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수가 없다. 또한 몽우를 지지하는 현재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있기에 천재화가 몽우는 위대한 비상을 할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인 이들의 애정 어린 지지만이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몽우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천재화가는 그래서 외롭고 고독한 것인 것을...천재화가는 그래서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도장을 예술도장으로 말하는 것이 성경이나 불경의 언어보다 더 찬란한 것인 것을...그리고 그 마음과 그 생각이 높고도 순수한 것임을...이제는 알아 갈 것이다. 나무와 새 그리고 바람과 물이 알 것이고 햇님과 달님 그리고 작은 벌레도 알 것 임을....망아지와 독수리들이 알기를 몽우가 천재화가임을 알기를........
2006년 11월.
▶ 본 사용 후기는 체험자의 주관적인 내용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효과를 가지는 것이 아님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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